

산뜻하고 따뜻한 정소연 소설의 쾌감
※ 이 오디오북은 윌라가 독점적으로 계약하고 직접 제작한 윌라 오리지널 오디오북입니다.
“왜 날 잡지 않아?
왜 함께 떠나지 않아?
왜 날 사랑해?”
손 놓고도 헤어지지 않는 마음
각별하게 남겨진 당신의 작별 인사
정소연의 소설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머나먼 미래에도 어떻게든 사람이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작은 믿음이 생긴다. 한 사람의 마음속이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알게 해주는 작품을 읽었다. (소설가 구병모)
한국 여성 SF는 시공간을 뛰어넘으면서도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기쁨과 슬픔, 고민과 희망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정소연은 그 대표 선수다. 확실히 다른 책에서는 경험한 적 없는 따뜻함이 넘친다.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
2005년 제2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스토리를 맡은 만화 〈우주류〉로, 2006년 제48회 서울대학교 대학문학상 소설 부문에서 〈마산 앞바다〉로 가작을 수상하며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소설가 정소연의 소설집 《미정의 상자》가 출간되었다. 지난해 먼저 선보인 《앨리스와의 티타임》과 나란히 놓이며 《옆집의 영희 씨》 복간 프로젝트가 완료된 것이다. 10년 전 “소박하지만 위대한 삶의 단면들”을 담아내며 “제법 묵직한 성취”(소설가 배명훈)를 이루었다는 평을 받았던 이 책은 아쉽게도 장기간 절판된 바 있다. 독자들의 꾸준한 복간 요청이 이어지던 이 책이 작가의 신작 단편들과 함께 새 짜임, 새 장정을 갖추어 래빗홀에서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비교적 초기작이 다수였던 《앨리스와의 티타임》과 달리 이 책에서는 구간 수록작 5편에 신작 9편이 더해져 총 14편이 묶였다.
첫 챕터인 ‘카두케우스 이야기’는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가 배경인 연작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먼 거리를 단숨에 건너갈 수 있는 ‘비상점’을 통해 먼 항성계 사이를 건너갈 수 있지만, ‘도약’이라 불리는 이 초광속 비행 기술을 ‘카두케우스’라는 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을 공유한다. 특히 〈깃발〉, 〈무심〉, 〈돌먼지〉, 〈비 온 뒤〉, 〈집〉은 기존에 책으로 묶인 적 없는 작품들이라 카두케우스 시대에 어떤 일들이 더 있었는지 궁금해했던 독자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챕터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은 재난 상황을 테마로 한 퀴어소설이 다수 묶였다. 표제작 〈미정의 상자〉와 〈현숙, 지은, 두부〉에서는 공통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삶의 다른 경우의 수를 탐색하는 상자가 등장하여, 극악의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대상을 살리고 싶고, 그래서 최선을 찾고자 시간마저 되돌리고 싶은 절박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금 미래의 SF”(소설가 배명훈)라 불리기도 했던 정소연의 소설은 SF의 신비를 충분히 발휘하는 동시에 탁월한 감수성과 섬세한 이야기 구성으로 과학소설을 어렵다고 느껴온 독자들과의 거리를 꾸준히 좁혀왔다. 그가 2010년대의 한국 SF 중흥기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담담한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읽는 이의 마음에 강한 진동을 전해 오는 정소연 소설의 매력은 이번 소설집 《미정의 상자》에서도 충분히 발휘된다.
정소연 지음 | 래빗홀 출간 | 김유정, 정다현, 최샛별, 장민선, 김승관 낭독
서울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2005년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스토리를 맡은 만화 〈우주류〉로 가작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한 이래 소설 창작과 번역을 병행해왔다. 《EPI》 《오늘의 SF》 편집위원,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초대 대표로 일했다. 《팬데믹》 《언니밖에 없네》 등에 작품을 실었고, 지은 책으로 《미지에서 묻고 경계에서 답하다》(공저) 《이사》 《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 《앨리스와의 티타임》 《미정의 상자》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어둠의 속도》 《루나》 《이름이 무슨 상관이람》 《허공에서 춤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