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박한 가족의 일상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꿈꾸다
※이 오디오북은 윌라가 독점적으로 계약하고 직접 제작한 윌라 오리지널 오디오북입니다.
이 도서는 2019 새로운 경기,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선정작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지켜야 하는, 혹은 가져야 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책." - 요조(책방주인, 작가)
"한국 독립운동사에 유래 없는 미시사의 기록을 담은 책.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심어준다." - 시한책방(북튜버)
『제시의 일기』는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양우조, 최선화 부부(백범 김구 선생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림)가 중국에서 맏딸 ‘제시’를 낳으며 1938년부터 1946년 환국 시까지 8년간 기록했던 육아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앞서 이 일기는 외손녀 김현주 씨가 정리하여 1999년에 동 제목으로 ‘혜윰’ 출판사에서 출간된 바 있으나 출판사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절판되었다. 2016년에는 원작 일기가 절판된 상황에서 오늘의 우리만화상(문화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한 만화가 박건웅 작가를 통해 『제시 이야기』라는 그래픽 노블로 출간되기도 했다. 일기가 쓰여진 지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출간되어 세간에 알려진 지도 어느덧 20년이 지난 지금,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 정부 100주년을 맞이하여 『제시의 일기』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부부의 일기 속에서는 중일전쟁이 한창일 무렵 하루가 멀다 하고 퍼붓는 일본군의 공습을 피해 방공호를 제집 드나들 듯 하면서도, 전란 속에 태어난 어린 딸 제시가 잘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녹록지 않은 여건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의연한 모습과 한교(한국 동포)들 사이의 끈끈한 정도 느낄 수 있다. 창사, 광저우, 포산, 류저우, 치장, 충칭 등 중국 각지를 돌며 진행된 항일 활동 중 만난 중국인들에 대해서도 이국적인 반면 일본이란 공동의 적에 대항해 싸우며 서로 돕고 배려하는 따뜻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일기는 1938년 7월 4일 중국 장사에서 시작되어 8년간 이어진다. 한국판 안네의 일기라 할 수 있는 이 기록은 맏딸 ‘제시’의 탄생으로 문을 연다. 양우조는 “조국을 떠나 중국에서 태어난 아기. 그 아이가 자랐을 때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제 몫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안의 돌림자 ‘제’자를 사용해 딸 이름을 ‘제시’라고 짓는다.”라고 말하며 일기를 써내려간다. 제시라는 영어식 이름을 지어주는 모습에서도 독립운동가 부부의 간절한 조국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그리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피난을 가거나 공습을 피해 숨으면서도 밥을 지어 먹어야 했고, 병마에 시달리며 수차례 수술도 받아야 했으며, 점점 커 가는 아이의 재롱을 보며 미소 짓기도 했다. 그런 일상 속에서도 나라를 걱정하고 조국 독립의 희망을 놓지 않는 단상의 기록들은 그들의 결연한 의지를 확인케 한다. 또한 이 책에는 굳이 역사 교과서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그 시대의 지식인들, 즉 백범 김구 선생과 도산 안창호 선생 같은 분들의 소소한 일화들도 소개되고 있어 그 재미를 더한다.
양우조, 최선화 지음 | 김현주 정리 | 우리나비 출간 | 윤호, 최정현 성우 낭독
양우조
호는 소벽, 본명은 양명진. 1897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성장하였다. 19세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매사추세츠 주 뉴베드퍼드(New Bedford)에서 방직학교를 졸업하였다. 그가 방직 공학을 공부한 이유는 내 손으로 조국 동포들을 입혀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학업을 마친 후 미국 흥사단에 가입하여 활동했던 그는 다시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과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 임시정부 생계부 차장 등으로 항일활동을 하였다. 정부로부터 그 공훈을 인정받은 그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최선화
양우조 선생의 아내이자 제시의 어머니로서,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1931년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모교에서 교편을 잡는 신여성이었던 그녀는 1936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하고 차후에 한국애국부인회의의 서무부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그녀 역시 정부로부터 그 공훈을 인정받아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