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한산><명량><노량> 원작 모티브
※이 오디오북은 윌라가 독점적으로 계약하고 직접 제작한 윌라 오리지널 오디오북입니다.
★영화 〈한산〉 〈명량〉 〈노량〉의 원작 모티브!
★국보 76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난중일기』 완역본
★영웅 이순신이 죽음으로 지켜낸 조선 수호 연대기
1,700만 관객으로 국내 영화 관객 수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 〈명량〉의 후속작 〈한산〉의 흥행으로 말미암아 영화의 원작 모티브인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진한 감동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린 충무공 이순신은 가공의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이다. 우리 민족은 5천여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을 겪었지만, 성웅 이순신과 같은 슬기로운 조상들이 있었기에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난중일기』는 명장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쓴 7년간의 일기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달인 1592년 5월 1일부터 그가 전사하기 전 달인 1598년 10월 7일까지의 기록이다. 일기의 친필 초고는 현재 충청남도 아산에 있는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다. 본래 이 일기에는 어떤 이름도 붙어 있지 않았으나, 1795년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를 편찬하면서 편찬자가 편의상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전서 권5부터 권8에 걸쳐 이 일기를 수록했다.
이순신의 부하를 먼저 생각하는 리더십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었고 곧 7년의 기나긴 임진왜란에서 조선 수군의 대승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풍전등화와 같은 국가의 위기를 극복해 가는 충무공 이순신의 인간적 고뇌와 리더십이 담긴 『난중일기』를 오디오북으로 만나 보자.
閑山島月明夜上戍褸 한산도월명야상수루
撫大刀深愁時 무대도심수시
何處一聲羌笛更添愁 하처일성강적갱첨수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순신 지음 | 더스토리 출간 | 백재승 낭독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임진왜란에서의 활약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중요한 해전을 치루며 왜선 320척을 격파했다. 49세 때 그는 한산도로 진을 옮겨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으나 53세 때 원균 일파의 모함과 상소로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되던 중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출옥하게 되었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하자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남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로 130여척의 왜선과 맞서 싸웠고(명량대첩), 54세 때 명의 수군과 연합해 왜선 500여척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하였다. 6년 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됨에 이어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5년 뒤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져 역사에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