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국가로부터 고문을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잔인한 고문으로 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모자라 사건의 경위마저 은폐하려 든 정부의 행태에 많은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고 함께 분노했습니다.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은 이후 6월 항쟁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공권력의 인권침해를 상징하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인 1987년 3월, 부산에서도 끔찍한 인권유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부랑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진 형제복지원이 부랑인들을 감금하고 강제 노역에 동원했던 것입니다. 무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구타와 살해, 암매장까지 서슴지 않던 형제복지원. 그러나 형제복지원의 원장 박인근은 징역 2년 6개월을 받는데 그쳤습니다.
2020년 5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재심이 청구되었습니다. 같은 해 벌어진 두 가지 인권침해 사건은 오랜 기간 다른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발자취가 된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진상을 재조사하기까지 삼 십여 년의 시간이 걸린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되었을까요?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 주목하는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그는 이번 강의에서 “과연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법은 공정한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우리 모두가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공정한 사회를 꿈꾸는 모든 분
- 재심 사건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
- 평소 "그것이 알고 싶다"를 애청하시는 분
- 영화 <재심>의 실제 인물, 박준영 변호사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분
작은 섬 노화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을 도와 연탄을 팔고 오징어를 팔고, 장례식에 쓰이는 종이꽃을 접으면서 자랐다. 중학교 때 엄마가 돌아가신 뒤 광주로 유학을 갔고, 가출과 방황을 일삼는 문제 청소년으로 살았다. "근면 성실하나 준법성이 요구"된다는 평가를 받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나마 들어간 대학은 1학년 때 그만뒀다. 군대에서 만난 배 병장을 따라 사법 시험 공부를 시작해 2002년에 합격했다. 수원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고, 국선 변호에 열중하던 2008년 운명의 사건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을 만났다. 국가기관의 도움 없이 형사 재판 재심에서 무죄를 이끌어낸 최초 살인 사건 사례가 된다. 탈북자 간첩 사건을 변호하게 되면서, 재심과 공익 사건만 맡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덕분에 개인 재정은 파산 지경에 이르렀지만, 재심 청구에서는 단연 빛을 발한다. 남다른 사춘기를 보냈다. 가출을 자주 하며 왕십리 프레스 공장, 동인천 정비 단지에서 '꼬마'로 일했다. 군 제대 후 한 달 선임 배 병장과 함께 신림동 고시촌에 무작정 들어가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1점 차'로 합격했다. 학력, 경력, 인맥이 딸려 사건 수임이 어려웠다. 불가피하게 국선을 많이 하게 됐고, '국선 재벌'로 불리기도 했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의 사건을 많이 하다 보니 "법은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을 나도 모르게 갖게 되었다. 형사 사법 피해자들의 재심 사건에 관심이 갔고, 언제부턴가 전념하게 됐다. 2015년 제3회 변호사공익대상을 받았으나 파산할 뻔했다. 2016년 8월 '백수 기자' 박상규와 진행한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기획으로 기사회생했다. '바보 변호사', '시민 변호사', '우리들의 작은 영웅'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동안 똑바로 살아야 하는데, 부담이 크다. 2015년에는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인 김신혜의 재심 개시 결정이 났는데, 이는 수감 중인 무기수의 재심으로는 최초 사례였다. 2016년에는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의 재심에서 연달아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대한민국 최고의 재심 전문 변호사로서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는, ‘우리들의 변호사’로 살아갈 생각이다.